(1275회.440논어, 양화11)
공자가 말했다. “예다 예다라고 말하지만 구슬이나 비단만을 말할 것인가? 음악이라 음악이라 말하는데 종이나 북만을 말할 것인가?”
예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존경을 옥이나 비단으로 나타낸 것이다.
단순히 옥이나 비단으로 외형적인 장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동화(同和)를 외형적인 종이나 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근본을 잊고 말단인 종이나 북등 형식만 내세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자(程子)가 말했다. ‘예(禮)는 오직 한 결같이 질서(秩序)를 세우는 것이고, 악(樂)은 오직 한 결같이 화(和)를 이루는 것이다.’ 사물 어느 것에나 예악이 없는 것이 없다. 질서가 있어야 화합이 되는 것이다. 바른 나라를 만들기 위해선 예와 악이 바로서야 되는 것이다. 겉치레만 우선하면 탐욕이 앞서고 윤리도덕이 무너진다. 동방예의지국이 무색해지고 있다.
자왈 예운예운이나 옥백운호재아 악운악운이나 종고운호재아
(子曰 禮云禮云 玉帛云乎哉 樂云樂云 鐘鼓云乎哉) -논어, 양화 제11장-
* 이를 운(云). 비단 백(帛). 쇠북 종(鐘). 북 고(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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