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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영 조심하셔서 잘 다녀오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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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영 즐산 안산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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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영 I can't wait to hike soon as I recover from my surgery, have great time hiking and let fresh air dry sweat from your forehead Mr.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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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영 In a few hours will warm up some degree I think, also fresh cold Air is good for the Lung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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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영 상큼한 공기 만끽 하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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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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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영 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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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영 It must still cold up there, please check your massages I sent some photos, one called Horse Shoe Bend, it was place made original planet of Apes with Charlton Heston, it's near Glen Canyon Dam, hope you like 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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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영 I can hear water running, also very beautiful sound of Bird singing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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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는 떠났고, 기자는 종으로 변장하여 숨었고, 비간은 간하다 죽임을 당했다. 이를 두고 공자께서 말했다. “은나라에는 세 사람의 인자가 있었다.”
(286)

미자는 떠났고, 기자는 종으로 변장하여 숨었고, 비간은 간하다 죽임을 당했다. 이를 두고 공자께서 말했다. “은나라에는 세 사람의 인자가 있었다.”
무도한 폭군 주왕에게 미자는 인정을 베풀라고 간언했지만 들어주지 않자 떠났고, 기자도 폭정을 그만두라고 했지만 듣지 않자 미친척하고 노예같이 숨어살았고, 비간도 선정을 베풀라고 간언하다가 주왕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오로지 백성을 위한 마음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폭정을 말렸다.
이렇게 군자의 도리를 다하는 것을 공자는 인자(仁者)라 추앙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에 아부하며 빌붙어 있으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박쥐들이 깊이 새겨보았으면 한다. -주왕의 폭정을 사가(史家)들이 주지육림 포락지형(酒池肉林 炮烙之刑) 이라고 기술했다.-

미자거지하고 기자위지노하고 비간간이사하니라 공자왈 은유삼인언하니라
(微子去之 箕子爲之奴 比干諫而死 孔子曰 殷有三仁焉) -논어, 미자 제1장-
* 키 기(箕). 종 노(奴). 견줄 비(比). 간할 간(諫)
* < 본 게시글은 저작권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원용하실 때 꼭 출처를 밝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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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영 정말 훌륭한 모습이군요. 오래오래 살도록 주의의 분들이 정성을 드리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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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영 산은 언제나 우리를 말게 해 주지요. 마음껏 즐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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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영 미자, 기자, 비간은 세상 사람들을 위해 나섰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숨어서 자신의 몸을 보전하거나 비간처럼 살해 당했으니 비록 어질기는 했으나 좋은 신하는 못 되었고 백성들의 좋은 지도자도 되지 못했지요 .
공자께서도 노나라의 대사구(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라는 장관급(대부)벼슬을 하다, 혼탁한 정치를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떠난 적이 있다 합니다. 세상을 위해 큰 뜻을 품고 나섰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에 떠날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래서 하신 말씀이, 위나라 대부였던 영무자에 대해
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 其知可及也 其愚不可及也. (방유도즉지 방무도즉우 기지가급야 기우불가급야)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지혜로웠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는 어리석었으니 그의 지혜로움은 따라 갈 수 있겠으나, 그의 어리석음은 따라 갈 수 없다”라고 하셨겠지요.
위나라 영무자는 나라가 잘 운영되던 시대에는 두드러지게 한 일이 없었으나 (따라서 이 점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따라갈 수 있는 지혜), 다음 시대에 나라를 잃게 될 무렵에는 온 마음과 힘을 다하고 일신의 어려움과 험함을 마다하지 않고 일을 주선하여 그 자신도 보전하고 나라도 구했다고 합니다(꾀 많고 약은 사람들은 이런 시기에는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 바쁘고, 그나마 낫다는 사람들도 몸을 숨겨서 일신의 화를 면하려고 하지요)
그런 영무자에 비해 당신께서 미치지 못한다고 하신 게지요. -
→ 정광영 맥수지탄(麥秀之歎), 서리맥수지탄(黍離麥秀之歎)
-《史記》〈宋微子世家〉.《詩經》〈王風篇〉
미자거지하고 기자위지노하고 비간간이사하니라 공자왈 은유삼인언하니라(微子去之 箕子爲之奴 比干諫而死 孔子曰 殷有三仁焉) -논어, 은나라 말에 微子(미자)는 떠나고 箕子(기자)는 종이 되고 比干(비간)은 간하다가 죽었다. 공자는 “은나라에 세 어진 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논어’ ‘微子’편 첫 장이다. 은나라 말의 혼란기에 仁의 덕을 실천한 微子, 箕子, 比干의 사실을 기록하고 공자의 논평을 덧붙였다.
微子는 이름이 啓(계)이다. 은나라 帝乙(제을)의 장남으로 은나라 마지막 왕인 紂(주)의 이복형이다. 紂를 諫(간)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자 조상을 제사 지내는 제기들을 갖고 山西省 潞城(노성) 동북쪽에 있던 微(미) 땅으로 갔다. 周나라 武王이 紂를 정벌하자 항복했는데, 무왕은 그를 微國에 봉하고 子爵(자작)의 지위를 주었다. 그래서 微子라고 한다. 뒤에 은나라의 뒤를 이어 宋에 봉해졌다.
箕子는 이름이 胥余(서여)로, 紂의 아저씨다. 紂를 간했으나 듣지 않자, 거짓으로 미친 척하다가 奴隸(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해서 숨어 지냈다. 주나라 무왕은 紂를 정벌한 후 기자에게 천하를 다스릴 방책을 물었는데, 이때 기자는 洪範(홍범)을 진언했다고 한다. ‘사기’에는 기자가 朝鮮에 봉해졌다고 되어 있다. 爲之奴는 紂의 노예가 되었다는 말이다.
比干도 紂의 아저씨다. 미자가 떠나고 기자가 노예가 된 후 비간은 紂를 강력하게 간했다. 그러자 紂는 ‘성인의 심장에는 일곱 개 구멍이 있다고 하니 심장을 열어보자’ 하고는 비간을 죽이고 심장을 열어보았다고 한다. 은나라는 기원전 1100년 무렵에 멸망당했다.
微子 箕子 比干은 지성으로 군주를 섬기고 나라를 사랑했던 어진 이였다. 정약용은 세 사람의 행위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충효의 행위가 義에 합치했으므로 그들의 仁은 똑같다고 부연했다. 亂世에는 민족을 위하는 正義를 실천해야 진정 어진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리 이삭이 무성함을 탄식한다는 뜻. 곧 고국이 멸망한 탄식. 중국 고대 3왕조의 하나인 은(殷)나라 주왕이 음락에 빠져 폭정을 일삼자 이를 지성으로 간한 신하 중 삼인(三仁)으로 불리던 세 왕족이 있었다.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이 그들이다.
미자는 주왕의 형으로 누차 간했으나 듣지 않자 국외로 망명했다. 기자도 망명했다. 그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거짓미치광이가 되고 또 노예로까지 전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왕자 비간은 끝까지 간하다가 결국 가슴을 찢기는 극형을 당하고 말았다.
이윽고 주왕은 삼공(三公:왕을 보좌하던 세 제후)의 한 사람이었던 서백(西伯:훗날의 주문왕(周文王)의 아들 발(發)에게 주살(誅殺)당하고 천하는 주왕조(周王朝)로 바뀌었다.
주나라의 시조가 된 무왕(武王) 발은 은왕조의 봉제사(奉祭祀)를 위해 미자를 송왕(宋王)으로 봉했다. 그리고 기자도 무왕을 보좌하다가 조선왕(朝鮮王)으로 책봉되었다. 이에 앞서 기자가 망명지에서 무왕의 부름을 받고 주나라의 도읍으로 가던 도중 은나라의 옛 도읍지를 지나게 되었다. 번화하던 옛 모습은 간데 없고 궁궐터엔 보리와 기장만이 무성했다. -
→ 정광영 People act like that, they don't think of future conseque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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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영 박영주 교수님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덕분에 늘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김흥순님 한층 넓은 주석으로 깊이있게 풀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봄 같은 날 편안한 시간 되세요. 이재길 대표님 햇볕이 따스한날 봄이 멀지 않았습니다. 조만간 차한잔 여유를 가졌으면 합니다. 김원문님 ‘사기’에는 기자가 朝鮮에 봉해졌다고 되어 있네요. 위키백과에 보면 기자조선(箕子朝鮮)은 고조선의 왕조 중 하나인 고대 국가이다. 조선시대에는 일반적으로 고조선을 셋으로 구분하였는데 기자가 세웠다고 하는 기자조선은 이 중 두 번째 시기에 해당된다. 명칭은 단군조선과 같은 ‘조선’이지만, 구분을 위해 후조선(後朝鮮) 또는 기씨조선(箕氏朝鮮)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기자조선은 실재 여부를 비롯하여 건국 과정, 성격에 대한 인식이 시대에 따라 논란이 있다. 현재 한국과 북조선의 사학계 중 다수는 일반적으로 기자조선에 대한 고전적인 인식(기자동래설,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의 승계 등)을 부정하는 편이며, 그 유래와 실체에 대한 여러 주장이 있다. 기원전 1122년(또는 기원전 1100년)부터 기원전 198년(또는 기원전 194년)까지 존속하였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Kyong-Sun McKenzie님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명한도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Alto Kim님 공감하는 말씀입니다. 즐거운 날 입니다. 남조현익님 감사합니다. 자주 소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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